2026. 4. 26. 23:01ㆍthoughts
——— written by. 한강은.
<왕과 사는 남자> 이후 OTT 신작이나 새로 개봉하는 영화가 딱히 입소문을 주도하지 못하는 요즘. 회사에서 소소한 일상을 주고 받는 동료들끼리 ‘요즘 볼만한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재밌는 건 1주일 전에 거론했던 드라마가 바로 1주일 후 나를 포함한 여러 애청자의 흥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인데.
불과 지난 주까지만해도 ‘무대인사 하러 여기 안오나’, ‘제작발표회 하러와서 실제로 딱 한번만 봤으면 좋겠다’ 라는 소망을 가지게 했던 작품은 최근 MBC에서 방영을 시작한 <21세기 대군부인>으로, 지상파 공중파 드라마에 일말의 호응도 남아있지 않던 우리 연령대의 관심을 오랜만에 이끌어 내었다(사무실이 온갖 무대인사로 상징적인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본 방송 전부터 이 방송사는 화면 하단과 우측 상단의 배너를 통해 지겨우리만큼 홍보를 해대기도 했었다.

아이유와 변우석의 새로운 호흡이라는 키워드와 21세기에 재등장한 대한민국 왕실이라는 판타지 콘셉트, 그리고 성공한 여성 사업가와 왕자님의 러브 스토리라는 대주제는 그야말로 화려하게 온갖 미사여구로 치렁치렁 장식이 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홍보에서 은근히 넛지Nugde하듯이 ‘이거 정말 비용을 많이 들인 올해 우리 방송사 최고 대작인데, 안보면 후회할거야’와 같은 뉘앙스를 심어주었다고 해야 하나.
뭐 딱히 볼만한 다른 콘텐츠를 발굴한 것도 없었던지라 한 방송사에서 저만큼 자신있다고 추켜세우면 애써 외면하는 것도 치사하다는 생각에 마주한 <21세기 대군부인>의 첫방송은 재미있었다(앞부분은 좀 놓쳤지만 무려 본방사수라는 걸 했다!). 화제성을 위해서는 첫방송이 몰아치듯 채널 고정을 하게 해야한다는 콘텐츠 소비 트렌드처럼 신속한 컷 전환과 다채로운 인물-장소 배경을 제시했다. 그런 ‘노력’에도 걸리는 부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주말이 지난 다음 주 월요일, 새로 시작한 이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주고 받으며 일부의 공감(Negative)과 일부의 흥미(Positive)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2주가 흘러 돌아온 방영 3주차 일요일. 이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여러 논란과 그리고 짚어두고 싶은 꼭지들에 대해 이 개인적인 포스팅으로 기억해두려 한다.

# Scene 1.
미스 캐스팅 논란.
내게 <21세기 대군부인>의 첫 화가 흥미진진했던 이유는 변우석이라는 새로 보는 얼굴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첫주차 방영 후 동료들에게 ‘변우석의 외모가 흥미로워서 끝까지 봤다’라고 평할 정도였다. 그의 전작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나는, 190cm에 달하는 장신이 한복을 재해석한 양복을 입었을 때의 생경한 느낌에 대단한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아이유보다는 신예이기 때문에(같은 의미로 아이유가 훨씬 어린 나이부터 활동을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페이스가 전달하는 느낌이 여자 주인공보다 낯설고-어리고-새로운 느낌을 전하고 있으며 따라서 극중 로맨스 드라마의 남녀 커플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여성이 연하-남성이 연상인 이 드라마의 설정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화면으로도 변우석의 피부톤이 아이유보다 훨씬 밝고 청아해서 배우들의 실제 나이가 아무리 드라마 상의 설정과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변우석이 더 어려보인다.


게다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한국 태생의 글로벌 기업 중 가장 잘 나가는 계열사의 여성 대표라는 설정까지는 OK, 가족 아닌 가족의 무관심과 홀대를 받은 ‘상처’ 때문에 승부욕이 투철하고 내로라하는 소유욕을 발휘하는 ‘능력있고-재력있고-예쁘기까지한(실제 1화 대사이기도 하다)’ 여자 주인공이 꼭 아이유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가 아무리 <나의 아저씨>와 <호텔 델루나>를 모두 소화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최근작이 <폭삭 속았수다>였던 점을 기억하는 이가 있다면 도통 어떤 캐릭터를 배우의 주체로 삼고 있는지는 더 모호해진다. 난 대한민국 국민 중 대부분이 아이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알고 있고, 삼촌팬 그 이상의 신드롬을 만들어낸 국민가수 중 한명이며 가수 → 예능 → 배우로 많은 캐릭터적 소모를 겪은 인물이기에 이제는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그녀가 캐릭터를 화제성과 흥미로만 뽑지는 않으리라 기대하지만 그녀의 선택지는 물론 내 기대와는 달랐을 수 있을 것이다.
가족 경영이 중심인 대기업에서 사생아가 태어났고 후처의 사망으로 본가에 내던져진 사생아가 존재한다는 충격만으로 본처가 사망했다는 짧은 설명. 그러나 여자 주인공은 본래 가족이 본인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저 대단한 노력으로 갖게된 ‘능력’과 ‘성과’ 하나만으로 홀로 남은 아버지와 유일한 형제인 오빠의 인정과 지지를 받으려 하지만, 그들 또는 세상의 반응이 기대치에 못미칠 때마다 악랄한 표현과 성질머리로 자신의 입장이 정당하다고 호소한다. 그녀는 극 중 여러 차례 여러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관종’이라고 표현되곤 하는데, 그래서일까. 주변과 세상의 잣대를 외면하고 오로지 그녀의 발칙함을 귀여운 앙탈 정도로 받아들이는 두 남자 주인공의 감정선을 읽고 있으면 ‘여자 주인공은 여전히 그냥 이쁘면 되는구나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쁘다’. 이 말도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나의 아저씨>에서 故이선균이 자주 가는 단골 술집 사장에게 “걔 안왔어? 춥게 입고 다니는 애. 이쁘게 생긴.” 이라는 대사는 ‘맞아. 아이유가 극 중에서 투명인간처럼 존재감이 없고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팍팍한 불쌍한 청춘을 그리고는 있지만 누군가 가만히 바라봐줄 때는 이쁜 얼굴이지.’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반면 <21세기 대군부인>에서 스스로를 수도 없이 이쁘다라고 칭송하는 부분에선 ‘엉?’하는 생각이 왜 드는 걸까. 물론, 일반인인 우리와 비교하면 절세미인일 수 있으나 그녀의 세계관에서 그녀가 절세미인인가.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차라리 그녀에게 맞지 않는 대사가 시청자에게도 불편한 설득력을 심고있다는 소리인데 차라리 김지원이나 수지처럼 자강두천한 인물이었다면 그림체가 맞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사실 김지안 작가 웹소설 기반의 이 극작이 어떤 비화를 통해 캐스팅 결정이 된건지 나는 모른다. 나는 일반 대중이며 웹소설 전제 당시 기존 팬덤이 어떤 가상 캐스팅에 호응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 극중 초반인지라 내게 전해진 약간의 어색함은 아이유의 소화력으로 차차 극복해내야하는 과제이겠지만 극중 성희주라는 캐릭터가 사업적 수완에 능란하고 교태로운 웃음을 활용하거나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겸비해 적재적소에 본인만의 끼를 발휘하는, 하지만 인정 욕구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결핍이 있는 인물에 얼마만큼 신속하게 녹아드는지를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 Scene 2.
판타지? 로맨스? 대한민국 국민의 역사 의식을 시험하나?

<궁>(2006)이라는 드라마가 내 학창시절 방영됐었다. 지금도 연기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 주지훈 배우, 아이돌 출신 윤은혜의 데뷔작 같은 것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 드라마의 마지막 씬이 종로에서 행인 캐스팅 하나없이 촬영되었다는 흥미로운 후일담과 ‘말도 안돼, 우리나라에 왜 아직 왕실이 있고 황태자 같은 게 있어?’라는 거부감은 그 드라마가 유사 시대 더욱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던 만화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가 각본으로 각색된 작품이라 적정한 설득력을 통해 상쇄할 수 있었고(근데 이 포인트는 <21세기 대군부인> 역시 웹소설을 기반으로 하니까 패스) 만화책의 표지와 첫장만 유일한 컬러였던 점을 연상한다면 만화책의 화려한 배경이 실제 영상물로 방영된다는 것만으로도 여성층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충분했던 것이다.
<궁> 역시 조선시대가 전쟁과 침략으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대한제국으로 거듭난다는 설정까지는 따라온다. 다만 대한민국 왕실이 굳건히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을 대한제국의 가상의 황제 성조(극 중 최불암)가 왕실의 맥을 이어준 절친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면목없음과 감사함의 표현으로 훗날 후손끼리 정략결혼을 시키기로 했다는 배경 설명으로 부연한다. 지금보면 대사, 시선처리 하나하나 어색해서 손발가락이 온전히 펴진 상태에서 보기 힘든 그 드라마도 대한민국에 역사적 판타지를 가져올 때는 그런 서술로 설득에 공을 들였다.

<21세기 대군부인>은 그런 설명이 없다. 왕실은 무능하지만 명맥상 존재하고 총리가 현재 대통령의 직함을 수행하는데, 우습게도 야구 경기를 보는 장면은 현실 그대로를 반영한다. 그러니까 일제의 침략이나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의 일시적 소실도 없었고 대통령의 선출도 없이 이씨 가문 왕조가 굳건히 이어졌는데, 국민을 멍청하게 만들기 위해서 한 군사정권의 대통령이 서양에서 들여온 야구 경기는 어떻게 국민들이 주말마다 성원하는 스포츠가 되었으며 그 자리에 어떻게 왕실의 일원이 주말 데이트 코스프레를 하러 갈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시청자는 아무도 없다. 그래, 간편하게 ‘이 드라마는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1천 5백만 관람객을 끈 <왕과 사는 남자> 관람 후기에 올라온 엘리베이터 썰의 당사자는 너그러이 용서 받아야 마땅하다. ‘단종이 진짜 죽을 줄 몰랐어’라는 한 관람객의 말에 엘리베이터에 동승한 모두가 할말을 잃고 싸해졌다는 이야기. 그 일화의 종착지가 ‘아무리 그래도 우리나라 역사관은 잘못되어서는 안된다, 무식은 죄다’였던 점을 기억한다면 지상파 골든 타임 드라마에서 이 수준의 역사적 훼손을 설명없이 제공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지상파라서 더 엄숙해야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전한 매체의 파급력을 인정해야한다는 의미이다.
왕실은 스스로 무능하다고 자조하면서, 그런 왕실이 현대에 가져다놓은 철저한 신분과 계급제도에 가장 거센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과의 계약 결혼을 승낙한다. 왕실 스스로가 ‘장사꾼’이라 칭하는 기업과 가문의 도구가 되기를 자처하는데 국민은 여전히 이안이라는 잘생긴 대군의 로맨스에 열렬히 환호하는 우매한 대중으로 표현될 뿐이다.


그러니까 이번 주 방송된 내진연 중 드레스를 입은 여자 주인공 성희주와 제국 정복을 입은 남자 주인공 이안이 왈츠를 추는 장면은 차라리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구본신참’이라는 고어를 들어 서양식의 화려한 파티를 즐겼다는 역사적 기록의 변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행사의 이름이 왜 내진연(궐 내 왕실 가족 등 내부인사 간의 행사)으로 지어지고도 정재계 외부인사를 잔뜩 초청한 왕실의 대외적 행사로 설명되어 두 사람의 결혼이 삽시간에 기정사실화되는 도구로 설정되었는지는 맥락적 한계가 있다. 고증을 어떤 부분에서는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하지 않았나보다... 더이상 국내 콘텐츠가 내수용으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시대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기억하고 있다면, 그게 맞다면, 판타지라는 컨셉을 변명으로 삼는 건 너무 무성의하지 않나.

뭐, 그 외에도 대군이 대비가 멀쩡히 살아있는데 섭정을 하고 있다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나(수양대군도 대비가 살아있었으면 그렇게는 못했을 거야), 조선왕조실록에 담긴 적장자 계승의 역사를 차치하고 장자적통이라는 다소 허무맹랑한 근거로 둘째 아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아버지이자 왕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나, 그 결과로 첫째 아들이 적손의 왕위를 물려 받았다가 스스로의 유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순간 아내에게 방화 살해를 당하고도 사고사인지 살해인지 제대로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남편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어린 아들을 독보적인 왕으로 세우기 위해 다소 음흉한 계획을 세워대는 대비 이랑의 모습이나, 그런 대비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거나 의복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대군(이자 도련님)의 모습 같은 건 다 서술하기 힘들 정도다.

대충 넘어가야지 생각하다가도 진짜 납득이 안되는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대비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왕실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다섯살 난 아들의 왕좌를 유지하기 위해 뒤에서 판을 조정하는 다소 야비한 캐릭터로 분하는 반면, 궁궐 밖 세상의 여성 기업가는 자신의 태생적 결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런 왕실에 ‘감히’ 거래를 제안하고 이를 진정한 사랑으로 이루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내용이 이 드라마의 주제라는 점이다. 나는 두 여자가 어떤 부분에서 상대에 대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지, 더 많은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지 모르겠거든. 오히려 왕실은 쓰잘데기 없이 허례허식이 가득하고 구태의연한 관례를 들어 모든 것을 가로막는 불편한 장치로 존재하면서 대외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드높여야하는 행사의 장치로 겨우 활약한다는 전제라면 현재 왕실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가 가장 심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영국이라든가 일본이라든가 하는 배경만 대강 따온 것이라는 생각만 드는거다. 근데 또 이상한 게, <21세기 대군부인>과 가장 유사한 현실적 배경이 찰스왕자와 다이애나비라고 하면 다이애나비는 그녀만의 매력을 통해 전국민적 사랑을 한몸에 받았었다는 점이다.
# Scene 3.
드라마의 주 소비층은 여성이므로, 여성상에 대한 고뇌는 필수다.

어제 우연찮게 <21세기 대군부인> 성희주 캐릭터에 대해 주인공 설정이 왜 이러냐는 숏츠를 보게되었다. 원래 제목은 ‘지금 <21세기 대군부인>에서 오히려 제일 억울한 사람’ 같은 것이었던 걸로 기억한다(절대로 정확하지 않다). 성희주의 배다른 오빠 성태주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인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대기업 총수의 사생아로 태어난 여자 주인공이 난데없이 등장하자 그 충격에 내 생모가 생을 저버렸고 집안의 분위기는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인정 받기 위해 아득바득한 독종이 되어 1등을 빼앗긴 적이 없는 피 안섞인, 나보다 잘난(하지만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여동생이 아버지가 점찍어준 결혼에 반항하자 보태는 말 한마디에 새언니와 본인의 인신공격을 하는데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는 착한(못난) 장남이라는 점을 짚은 것 같다. 요즘은 홍보 방식이 다양하니 그게 진짜 시청자 일각의 의견이었는지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한 어그로였는지는 검증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논란을 제기하는 콘텐츠는 대개 댓글 반응을 살펴보는데 이건 부러 그러지 않았던 것만 기억한다.
과연 드라마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만인의 사랑을 받는 여자 주인공이 대전제여야 할까 라는 입장에 나는 반대한다. <홈랜드>, <하우스 오브 카드>를 완주행한 내 입장에서는 주인공을 제일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도 세상에는 많더라. 그러니 대한민국의 드라마는 주 소비층이 여성이니까, 완벽한 남자 주인공과의 로맨스는 반드시 시청자인 ‘나’를 선량한 여자 주인공에 대입할 수 있어야한다는 전제는 이제는 조금 자유로워질 필요도 있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이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외면적 완벽함 아래 자리잡은 내면적 결핍과 속칭 발작 버튼에 대해서 대부분의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어야한다는 점은 생각해볼만하다. 지나간 ‘명작’으로 손꼽히는 드라마는 대부분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에서 출발하는데 이제는 고인이 되어버린 <나의 아저씨>의 이선균이 월 500만원을 받는 대기업의 부장임에도 계약직 하류 인생을 사는 여자 애의 연민을 불러 일으키며, <눈물의 여왕> 김수현이 대기업 사돈지간에 거론될 수 조차 없는 서민 최고의 아웃풋임에도 처가에만 들어가면 무시와 홀대에 어깨를 움츠려야 하고,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온 몸에 남은 고데기 화상 자국을 스스로 혐오하며 오랜 기간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는 캐릭터 설득력은 꼭 우리가 경험해온 일상과 닮아있어서 공감하고 말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21세기 대군부인>의 서사 중 클라이막스는 선왕의 죽음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단초가 선명해지는 장면이 될 것이다. 그래 그럼, 6화에 언급되었던 이안대군이 대비에게 선왕의 유서에 대해 알고 있다며 모종의 협박을 가하는 장면으로 돌아가는데 조선 역사를 통틀어 드라마 속 선왕이 행하려 했던 ‘우아한 왕위 계승’이 과연 대한민국 역사에 있기는 했던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나는 드디어 그런 생각이 들더랬다. 이안대군이 왕위를 이어받아? 성희주를 만나서 욕심을 내나보네? 그래서 뭐? 그게 21세기라고 칭하는 현대라도 과연 가능해? 저렇게 고리타분한 절차에 목을 매는 왕실에서? 뒤지고 뒤져서 양녕대군이 세종이 본인보다 뛰어남을 깨닫고 미친 척을 했다는 야사가 있긴 하지. 근데 그건 왕위를 받기 전의 일이라 매끄러웠을 수 있다. 그 다음 고증으로 적합한 역사는 태종 이방원이 형인 정종으로부터 진짜 왕위를 승계 받은 것인데 정종이 본인이 왕으로 군림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자기평가로 말미암아 한 것이 아니라 이방원이 설계한 세력에 이겨낼 재간이 없어서라는 평가는 기본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안대군이 아버지로부터 두번이나 강제로 이름을 하사받아가며 미움을 사고 형보다 앞서나가서는 안된다는 풍조로 철저히 배제받은 배경을 납득시키려면 ‘그냥 변우석도 나름의 상처가 있어요’라는 희미한 설정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왕실이 그렇다고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면 더더욱.
드라마 작가들이 대부분 인간상에 대한 고찰을 통해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을 완성하기 때문에 그들만의 분위기는 시그니처가 된다. 노희경, 김은희, 김은숙, 홍자매, 박지원 등 제 아무리 뉴스 기사 한 챕터에서 신작의 영감을 얻더라도 각자의 관점이 반영된다는 의미이다. <21세기 대군부인>은 MBC에서 개최한 드라마 극작본 공모전 수상작이란다. 아마 신예 유지원 작가는 앞으로도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더 글로리>의 김은숙 작가와 <호텔 델루나>, <주군의 태양>의 홍정은-홍미란 작가의 세계관과 유사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다. 판타지 로맨스는 판타지라서 많은 설명을 희석한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역사관을 판타지와 로맨스라는 다소 무지몽매한 컨셉으로 덮을 수는 없다.
# Scene 4.
그래도 의미는 있을 것이다.
<21세기 대군부인>은 다양한 각도에서 대한민국의 역사와 국민, 대중, 여성을 은근히 비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아주 의미가 없는 콘텐츠는 아닐 것이다. 드라마가 시작할 때 ‘극본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1초 남짓한 설명이 이 작품이 선보이는 다소 허술한 고증을 양해하긴 한다(세상은 처음에 관대하니까).


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의상 선정이 참 좋다. 드라마에 나오는 의상이 진짜 한복이 아니라서 몰매를 맞아야한다면 경복궁 무료 입장을 위해 기꺼이 한복을 입는 외국인들과 이를 비용을 받고 대여해주는 곳들은 역사 박물관 같은 정부기관을 통해 전수점검을 받아야할 거다. 명품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현대에 거의 활용되지 않는 천연 소재인 비단이 Full HD 화면을 통해 전해주는 생경하고 황홀한 감촉과 회화적 표현 장치가 된 아름다운 자수 같은 것들이 만인의 심미적 감각을 현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온갖 제약이 억압하는 궁궐 안에서 대비가 스스로의 여성성과 위엄을 의복을 통해 표현하는 폭발력과 변우석이 정무 수행 중 자주 입는 개량 한복 비슷한 해석의 의상들이 이 드라마의 미장센이 되어 이 작품이 가진 미술적 잠재력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지난 주 방송부터 드디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한 두 주인공이 실제 감정과 착각할 만큼의 로맨스 스토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랑 이야기는 빤하지만 여전히 재밌고 오글거리고 하물며 왕자와의 로맨스라니. 이안대군이 성희주에게 배운 마케팅 기술처럼 ‘아주 못돼처먹었거나’, 아니면 ‘야해’야 홍보가 되는 법이니까). 왕립학교 선후배인 두 사람이, 늘상 양보하고 뒤에 서는 것이 익숙한 국민적 사랑을 받는 대군과 앞서지 않으면 못버티는 관종인 성희주 캐슬뷰티 대표의 앙상블이 로맨스로 변모하며 긍정적인 시너지를 선보일 차례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만약 이안대군이 성희주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하게 된 국궁 연습장 무단 사용 발각 씬처럼, 그녀의 당돌하고 승부사적인 기질을 습득해 본인의 처지를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의미인지 매우 궁금해지긴 하다. 그러니 아직은 신예인 유지원 작가와 내로라할 이력의 박준화, 이대용 연출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매몰차게 외면할 수 없다. 조금 더 지켜볼게, 대신 신드롬을 넘어선 BTS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K한류의 시류에 타기위해 사극을 차용했다는 의혹이 확실시 된다면 철저히 외면 받을 각오는 되어있어야할 거다.

끝.